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문장과 문단이 짧지만 단단한 느낌이었다. 덕분에 속도감 있게 책을 읽을 수 있었고 그래서 더욱 마지막 반전이 충격적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김병수는 연쇄살인범이다. 과거에 죽였던 사람의 딸인 은희을 딸처럼 키운다. 나이가 들어 알츠하이머에 걸리고 치매 증상을 겪는 김병수는 매 순간 기억을 잊으며 산다.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녹음기와 노트에 기록하며 살아가지만 그마저도 역부족이다. 은희가 데려온 남자 박주태를 연쇄살인범이라고 생각하고 은희를 보호하기 위해 박주태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사실 은희는 치매노인인 김병수를 돌봐주는 요양보호사였고 박주태는 과거의 살인사건을 쫓는 경찰이었다. 은희는 김병수의 손에 죽었다. 모든 것은 김병수의 망상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의문이 드는 부분이 많았다. 김병수가 집에 들어온 개를 보고 누구 집 개냐고 물을 때 은희는 우리 집 개라고 했다. 그런데 개가 어디갔냐고 묻는 질문에 개를 키운 적이 어디있냐고 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서로 충돌하는 내용이 있고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책을 읽는 내내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김병수의 시점에서 치매에 걸린 그의 세상이 점차 붕괴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단편적인 현재를 기록하며 살고 먼 과거는 기억하지만 최근 일은 기억하지 못하고 미래 걱정만하며 사는 김병수의 삶에 연민을 느꼈다.
소설 후반부에 두 연쇄살인범의 대결을 기대했지만 김이 팍 식어버리며 끝이났다. 자신이 죽인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고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은희를 딸처럼 키웠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계획했지만 그런 딸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자신감 가득하고 철학적인 모습을 보인 김병수는 그저 70대 치매 노인일 뿐이었고 모든 것은 그의 망상이었음에 실망감도 컸다.
자주 미래 기억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나중에 무언가를 할 것이라는 목적을 기억하는 것을 미래 기억이라고 한다. 이 미래 기억을 하지 못하면 현재가 의미가 없다고 한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현재만 산다거나 미래보다는 지금을 살자는 말들이 생각이 났다. 물론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지만 궁극적인 목적을 가지고 이것을 기억하며 살아가자는 생각을 했다.